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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幻)-1
글쓴이 : 지상사 날짜 : 2015-01-01 (목) 08:09 조회 :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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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는 알았는 데 다시 알고 보니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알았을 바에는 차라리 알지 않았던 것만도 못할 때가 있는 데 그런 따위의 앎 가운데에 애매한 지각(知覺), 어긋난 지각, 착각(錯覺), 환각(幻覺) 따위가 있고 그런 것들을 통털어서 비량(非量) 또는 부정지(不正知)라고 한다.

어스름 달밤에 골목길에서 저만큼 보이는 사람 같기도 하고 돌기둥 같기도 한 것이 보일 때에 가까이 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사람인지 돌기둥인지 알송달송하여 도저히 분간할 수 없을 때에 그런 따위의 인식을 애매한 지각이라고 한다.

애매한 인식의 특징은 무엇인가가 있기는 있는 것만은 확실한 데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다만 그 정도의 지각인 데에 있다.

석양 볕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유리 조각을 보고 황금 조각인 줄로 알고 달려 가서 집어 들고 보았더니 황금이 아니고 유리 조각이었음이 판명되었을 때에 유리 조각을 황금으로 알았던 그 지각은 어긋난 것이다.

흘러가는 배를 타고 언덕 위의 나무들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인식의 주관적 입장이 정립되지 못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고, 휘두르는 불꼬치가 화륜(火輪)처럼 보이는 까닭은 인식의 객관적 대상이 일정한 곳에 자리잡고 있지 못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열병에 걸린 사람이 열이 고도로 높아졌을 때에, 허공에 핀 꽃이 보인다든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든가 하는 따위의 지각은 사실상 전혀 아무 것도 없는 데도 무엇인가가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는 이른 바 환각(幻覺)이다.

또 빌려주엇든 돈의 액수를 잘못 기억하고 실지로 빌려준 돈의 액수보다도 더 많은 돈을 돌려 달라고 한다든가 또는 이미 돌려 받은 돈을 아직 돌려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다시 돈을 달라고 독촉하는 따위의 지각은 잘못된 기억에 근거한 부정지(不正知)이다.

이상과 같은 부정지들 이외에도 가령 매우 화가 난 사람의 눈에는 장대 끝에 불꽃이 보인다든가, 또 눈병 따위나 기타 질병 내지 정신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흑백(黑白) 적록(赤綠)의 구별이나 쓴맛 짠맛 단맛 따위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다든가, 또는 돈이나 사랑이나 명예나 권력에만 환장한 사람에게는 미(), (), (), ()의 구별이 잘 되지 않고 오직 돈이나 벼슬자리나 여자나 남자만이 보이는 따위도 역시 부정지 즉 비량(非量)에 포함될 수 있는 데, 부정지는 형식적 정의로서는 일단 정지(正知)에 반대되는 지()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도의 종교철학 일반에 걸쳐서 부정지(不正知)는 인생의 모든 불행 내지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부정지를 제거하여 정지(正知)를 얻는 방법이 이른 바 현량(現量), 비량(比量), 성언량(聖言量), 염신(念神), 송주(誦呪), 지계(持戒), 명상(冥想), 금욕(禁慾), 고행(苦行) 따위라고 생각하여 오기도 했다.

특히 정지(正知)를 얻는 방법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부정지(不正知)를 제거함이 곧 정지를 얻는 방법이기 때문에 부정지만 제거되면 정지는 저절로 들어난다는 식의 생각도 인도 종교철학 일반에서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파사(破邪)와 현정(顯正)이 둘이 아니라 파사(破邪)가 곧 현정(顯正)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바로 그런 따위이다.

인도 종교 철학상에서의 일반적인 생각에 의한다면 인생을 괴롭다든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한, 그런 사람은 정지를 깨닫지 못하고 부정지에 의하여 잘못 인도되어 살고 있는 사람이다. 한 말로 하여 정지를 깨달은 부처님 같은 성자(聖者)들 이외의 중생들은 부정지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뜻에서 부정지의 세계는 속제(俗諦)의 세계이기도 하고 정지의 세계는 진제(眞諦)의 세계이기도 하다. 정지와 부정지와의 사이에 있는 여러 가지 관계에는 마치 불교 교리 일반에서 말하는 이른 바 진속(眞俗) 불이(不異)라든가, 공가중(空假中) 삼제(三諦) 중도(中道)라든가 하는 따위의 원리적 관계가 있듯이 그런 여러 가지 원리적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지와 부정지와의 차이를 그렇게 확대도 시키고 또 그렇게 세밀하게 따지고 본다면 정지와 부정지와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일은 성불(成佛)하기 만큼 그렇게 힘든 일이고 또 그것이 곧 성불하는 길이라고 하여도 과언(過言)은 아닐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라든가 또 불확정성 원리에 의한 자연과학적 모든 원리들도 인식주관과 그 대상과의 사이의 상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들이며 그런 상대성적 원리들은 불교현상론계에서의 연기론(緣起論)의 원리들과 원리적으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 데 이른 바 속제적(俗諦的)입장에서 볼 때에는 정지(正知)라는 것도 그런 상대성적 가변성(可變性)을 면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상대와 절대, 정지(正知)와 부정지(不正知)가 따로 따로 있는게 아니고 다만 상대적인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안다든가 부정지를 부정지로 아는 바로 그것이 절대적이고 또 정지(正知)라고 할 수도 있으며, 그런 말은 마치 유식(唯識) 교학(敎學)에서의 원성실성(1)(圓成實性)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의타기성(2)(依他起性)과 변계소집성(3)(遍計所執性)을 요지(了知)하는 것이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는 말과도 같다.

더욱이 현대의 정신병리학자들의 말에 의한다면 정신적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질적이 아니고 양적이라고 하는 데, 그러므로 미친사람 아홉이 미치지 않은 한 사람을 도리어 미친 사람이라고 외치기도 하고 또 아마 그런 중생적 원리에서 소크라데스에게 독약을 마시게도 하고 부처님의 법에도 말법(末法)이 있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기도 한 것이다.-(續)인도철학사상-원의범

삼성(三性):유식의 법상종에서 사,이,미,오(事理迷悟)의 일체 모든 법을 그 성질상으로 보아 셋으로 나눈 것.

(1)원성실성:현상의 본체. 곧 원만 성취 진실한 진여를 말함.

(2)의타기성:다른 인연에 의해 생긴 만유(萬有)

(3)변계소집성:이리 저리 억측을 내어 집착하는 성(性)이란 뜻. 범부의 미망한 소견으로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잘못 아는 일체의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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